기술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간다.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더 효율적으로. 그런데 그 속도가 인간의 속도보다 빠르다면, 누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까? 우리는 기술의 시대에 ‘멈추는 용기’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멈출 수 없는 기술, 가속의 시대
AI, 유전자 편집,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퀀텀 컴퓨팅, 초지능… 2020년대 후반부터 기술의 발전은 ‘점진적 개선’이 아닌 ‘질주’의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2030년대에 들어서며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 주기는 인간의 사고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기업은 멈추면 도태되고, 국가는 앞서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린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기술은 스스로 가속도를 높인다. 그러나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방향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은 선형이지만, 기술은 기하급수적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기술은 “가능한가?”를 묻지만, 인간은 “원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질문조차 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업데이트와 신기술 속에 휩쓸리고 있다.
기술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멈출 수 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개발된 기술은 반드시 사용되며, 일단 사용되기 시작하면 멈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 SNS는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중독과 혐오의 플랫폼이 되었고, AI는 편의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감시와 조작의 도구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 기술을 인간이 어떤 질문 없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 우리는 지금 ‘기술 수용성’보다 ‘기술 거부권’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기술이 존재하는 것이 좋은가?’ ‘이 기술이 가져올 인간관계의 변화는 무엇인가?’ ‘나는 이 기술과 거리를 둘 권리가 있는가?’ 같은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기술은 질문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기술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멈춘다는 것,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선택이다
멈춘다는 건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멈춤은 생각하고 되짚고, 방향을 조정하는 능력이다. 기술의 멈춤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속도와 균형을 맞추려는 행위다. 실제로 2040년대 들어 일부 도시와 공동체는 ‘테크 셀프 리밋(Tech Self-Limit)’을 선언하며 기술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실험하고 있다. 예컨대, AI 없는 학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요양시설, 스마트폰 프리 지역 등을 통해 인간 중심의 삶을 복원하려는 시도들이다. 기술이 계속 가속하는 상황에서, 그 흐름을 잠시 끊는 선택이 오히려 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 가능한가’에 앞서, ‘무엇이 괜찮은가’를 묻는 문화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기술을 주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결론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멈출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멈춤이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진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수용할 것이 아니라, 진정 원하는 삶을 위한 기술만을 선택할 줄 아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