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과 자동화가 일상이 된 사회.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낀다. 왜일까?
노동이 사라진 사회, 인간은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2050년, 완전자동화가 본격적으로 실현되었다. AI와 로봇이 모든 생산 활동을 담당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생계형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국가는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의식주는 보장된다. 겉보기엔 유토피아 같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오히려 “나는 무엇을 해야 의미 있는가?”라는 질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동이 사라지면서,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직업으로 서열을 나눌 수 없자, 사람들은 새로운 기준을 찾기 시작한다. 외모, 팔로워 수, 몸매, 연애 횟수, 거주지, 취미 수준, 심지어는 ‘AI 추천 알고리즘이 얼마나 자주 자신을 띄워주는가’ 같은 것까지. 노동이 사라진 사회에서조차 인간은 서열을 만든다. 그것은 생존 때문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싶어서다.
열등감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누구도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하지만 그 안에서도 질투, 열등감, 우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나는 일자리가 없다”는 말이 열등감을 유발했다면, 이제는 “나는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그것을 대체한다. 오히려 비교 기준이 모호해지며, 더 추상적인 비교가 인간을 괴롭힌다.
“저 사람은 창의적인데 나는?”
“그녀는 매일 무언가 배우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이제는 생산성이나 소득이 아니라, ‘자기계발’이 새로운 경쟁의 장이 되었다.
문제는, 자기계발조차도 알고리즘이 권유하고, 평가하는 시대라는 점이다. 우리는 정말 자유로워졌을까? 아니면, 더 미묘한 감시 체계 속에서 비교당하고 있는 것일까?
일하지 않는 인간,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할 때
노동은 인간에게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었다. 존재 증명의 방식이었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틀이었다. 따라서 노동이 사라졌다는 건 인간에게 “너는 이제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술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의미 없는 하루’를 그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 시선은 다른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역설적으로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은 더 강해졌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치 체계다.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 그러나 과연 그런 사회가 가능할까? 아니면 인간은 끝까지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을 찾고, 그 안에서 자기를 규정하는 존재일까?
결론
일이 사라져도 비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열등감은 생존이 아닌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느냐’로 새로운 사회를 정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