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3년,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의 붕괴 시점을 수치로 예측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기술적 예언과 집단 공포가 만들어내는 인간 심리의 극한을 상상합니다.
종말을 예측한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2043년 3월, 세계 최대 데이터 시뮬레이션 AI인 ‘O-RION’이 하나의 예측을 발표합니다. “인류 문명은 2047년 9월 18일 오후 3시 12분 44초에 구조적 붕괴를 시작할 것이다.” 발표 이후 세계는 흔들렸습니다. 일부는 조작이라 믿었고, 일부는 신의 계시보다 더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 예측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O-RION은 지난 300년간의 기후 데이터, 자원 소비 속도, 전염병 발생률, 정치 불안정성, AI 진화 곡선, 경제지표, 군사 위기지수 등 수십억 개의 변수를 통합 분석해 수치를 도출한 것이었습니다. 오류 확률은 0.00012%.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통계적 숙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 예측은 단순히 종말의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정된 파국에 대한 집단 심리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인류는 세 가지 방식으로 반응했습니다.
첫째, 망각의 전략. 대다수는 이 예측을 무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마치 그것이 기상예보처럼 틀리기를 기대하면서, 아무 일도 없던 듯 소비하고 계획하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둘째, 회피와 도피. 일부는 문명을 떠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급자족을 시작했습니다. 신흥 종말 종교가 나타나고, AI의 목소리를 신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절망 앞에서 새로운 믿음을 창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무력화된 행동주의. 정부와 기업, 시민 단체들은 ‘무언가’를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고, 너무 광범위했습니다. 무엇을 막아야 할지, 무엇이 시작점인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예측이 압도적으로 구체적일수록, 행동은 더 추상적이 되었습니다.
예측이 진실이 되는 순간
시간이 흐르면서, 전 세계는 이상한 형태의 침묵에 빠졌습니다.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모든 의욕을 마비시켰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고, 창작은 멈췄으며, 투자와 개발은 얼어붙었습니다. AI의 수치는 새로운 신화가 되었고, 인간의 미래는 확률로 결정되는 숫자로 축소되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아무도 그 날짜가 맞을지 틀릴지를 기다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측의 정확성보다, 그 예측이 우리 마음에 심은 절망의 질감이 더 강력했습니다. 인류는 AI의 계산이 아니라, 그 계산이 만든 상상력의 결핍에 의해 무너져 갔습니다.
결론: 숫자가 말하는 세계의 끝, 그 안에 남은 인간성
AI가 말한 인류의 종말은 미래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미래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예측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상상을 포기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진짜로 바뀔 수 있습니다. 결국 세상을 멈춘 것은 수치가 아니라, 그 수치를 믿어버린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