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임신의 결과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수정란 보관과 인공자궁 기술의 진보는 출산을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선택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글은 수정란 출생이 일상화된 사회를 상상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 가족의 탄생은 언제부터 선택 가능한 프로젝트였을까?”
생명의 시작이 ‘설계 가능한 것’이 되는 사회
2025년 현재도 난임 부부를 위한 체외수정 기술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기술은 치료를 넘어 선택의 도구가 됩니다. 유전 질환 예방, 외모 선호, 인지 능력 예측 등, 수정란의 ‘선별’은 ‘설계’로 전환됩니다.
특히 인공자궁 기술이 상용화되면 임신은 생물학적 한계에서 해방됩니다. 남성 커플도, 커리어를 중시하는 여성도, 출산이 위험한 고령층도 수정란을 통해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죠. 생명은 이제 관계와 타이밍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되는 변수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이들은 태어난 후 ‘출생의 내력’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왜 나는 이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선택됐을까?” 또는 “엄마 아빠는 자연스럽게 태어난 거야?”
탄생의 윤리: ‘선택된 존재’의 심리
수정란 기반 출생은 인간에게 새로운 심리적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자연의 우연’이 아닌 ‘의사결정의 결과’라는 사실은 어떤 감정을 남길까요?
한편으론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원해서 만들어졌어.” 하지만 반대의 감정도 공존합니다. “나는 타인의 기준으로 설계된 존재야.” 이는 성적, 외모, 감정, 성향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해 책임을 느끼거나 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부모에게 던집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단지 엄마, 아빠만의 결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AI 유전자 분석 엔진, 생명윤리 위원회, 보험사까지 개입한 결과라면, 인간 탄생의 주체성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가족이라는 개념의 변화: 계약된 공동체
수정란 출생이 일상화되면, 가족도 새로운 형태로 진화합니다. 생물학적 연속성보다는 ‘의도된 동반자’라는 개념이 강화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서로의 유전정보를 교환한 후, 계약서를 작성하고, 인공자궁 서비스를 통해 아이를 낳는 과정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가족이 더 이상 자연 발생적 공동체가 아닌, ‘합의된 구성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태어나기 전 부모가 설계한 나’에 대해 소송을 거는 사례도 생길 수 있습니다. 나의 외모, 지능, 성향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면 왜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역질문은, 탄생이 상품화될 때 발생하는 윤리적 균열을 드러냅니다.
결론: 우리가 선택되지 않았던 시절은 끝났을까?
수정란 출생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왜 낳았어?”가 아니라 “왜 이렇게 낳았어?”라고 묻습니다. 생명의 시작이 우연이 아니라 기획이 되는 시대.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과만을 소비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