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무한하고, 인간은 미미합니다. 그런데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우리가, 오히려 우주에서 가장 비이성적인 존재라면? 외계 생명체보다 더 낯선 존재로서의 인간을 되돌아봅니다.
우리는 우주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주는 거대합니다. 별은 수천억 개, 은하는 수천억 개, 공간은 끝이 없습니다. 이 속에서 인간은 극도로 작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외계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속에는 은연중에 인간 중심적 시선이 깃들어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주에 자연스럽게 속한 존재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기이한 문명을 구축하고 스스로를 낯선 존재로 만들어가는 중일까요?
인류는 과학, 기술, 자본, 전쟁, 감정, 종교를 통해 문명을 이룩했지만, 그것이 보편적 생명 진화의 결과라 볼 수 있을까요? 만약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외계 생명체가 우리를 관찰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낯설고 비합리적인 존재로 보일까요?
인간 문명의 낯섦: 왜곡된 진화의 산물
외계인을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높은 지능과 과학 기술, 고도로 발달한 감정 통제 능력, 생태와의 조화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어떨까요?
첫째, 인간은 기술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자멸적 행동을 반복합니다. 전쟁, 기후 파괴, 불평등, 감정적 폭력. 우리가 발명한 기술은 생존보다 파괴에 더 자주 쓰입니다. 외부에서 본다면, 인간 문명은 ‘비합리성의 집합’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인간은 지능과 감정을 분리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선택하며, 감정에 휘둘립니다. 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하지만,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는 극도로 불안정한 형태의 의식일 수 있습니다.
셋째, 언어와 기억, 문화의 축적은 인간을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규범과 집단 정체성에 얽매여 있고, 오히려 진화보다 반복을 선택하는 보수적인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인간은 가장 진보적인 동시에 가장 고립된 생명체입니다.
외계인의 시선으로 나를 다시 본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외계인은 어디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로. 우리가 우주에서 만난 생명체에게 설명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일지도 모릅니다.
AI, 유전자 조작, 신경 인터페이스, 기계 의식. 인간은 점점 더 자신을 변형시키고 있지만, 그 방향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진화’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우주에 속하지 않는, 극단적 변이체일 수도 있습니다.
외계인이 우리를 본다면, 기술 이전에 우리의 감정, 행동, 관계, 역사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에 주목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들은 우리와 너무 다르다. 낯설다. 위험하다.” 우리가 외계인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외계인 같은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결론: 우주는 넓고, 인간은 그 안에서 낯설다
인류는 스스로를 중심이라 믿었지만, 우주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문명의 진보가 곧 보편적 진화는 아닙니다. 진짜 외계인은,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