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자발적인가, 아니면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인가? AI와 인간이 모두 공감을 강요받는 시대, 진짜 감정은 어떻게 구별되고, 인간성은 어디에 존재할까?
공감하지 않으면 비윤리적인가?
최근 많은 조직과 사회가 ‘공감’을 윤리의 핵심 가치로 내세웁니다. 광고는 감동을, 정치는 소통을, 교육은 이해를 강조합니다. 심지어 기업은 직원의 ‘감정 표현’을 평가 항목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흐름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도 야기합니다. “감정은 자발적이어야 의미 있는 것 아닌가?”
AI 역시 이제는 감정을 읽고, 표현하고, 공감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챗봇은 위로를 제공하고, 고객센터는 감정 분석을 통해 응대 방식을 조정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결정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공감이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일까?”
감정도 업무가 되는 사회
‘감정 노동’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뿐 아니라, 교사, 간호사, 상담사 등 다양한 직군에서 ‘공감 능력’은 기술이자 성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일반 직장인과 AI 시스템 모두에게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AI는 ‘정서적 피드백’을 자동 생성합니다. “그 기분 이해합니다.”, “힘드시겠어요.”라는 말은 이제 대화 모델의 기본 템플릿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들은 실제 감정이 아닌, 상황별 반응 패턴일 뿐입니다.
둘째, 인간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무성의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회의에서 침묵하면 비협조적, 메시지가 건조하면 비호감으로 분류됩니다. 결국 감정조차 ‘성공을 위한 연기’로 변질됩니다.
셋째, 공감은 기술이 아닌 태도라는 본질이 왜곡됩니다. 공감해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진짜 감정을 억누르고,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는 사회를 만들어갑니다.
진짜 감정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우리는 종종 타인의 ‘진심’을 구분하려 합니다. “저 사람 정말 날 위하는 걸까?”, “이건 형식적인 말이겠지.” 이는 공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맥락과 태도, 기억과 관계의 축적에서 비롯된다는 증거입니다.
AI는 아직 이 축적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간조차, 공감이 성과가 된 시대에서는 자기 감정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슬픈 건가?”, “기뻐해야 하니까 웃는 걸까?” 이 질문들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저항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잘 공감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진짜 느끼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 둘은 닮았지만, 다릅니다.
결론: 감정을 관리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감정을 지켜야 한다
공감이 성과가 되고, 감정이 기술이 된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가짜 감정에 지치고, 진짜 감정에 위로받습니다. 인간이 감정을 표현하는 이유는 평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