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삭제, 감정 조절, 성격 업로드까지 가능한 시대. 자아가 ‘선택 가능한 상품’이 되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기억 삭제 기술의 상용화: 자아 편집의 시대
2035년, 기억 편집 기술이 정식 상용화되었다. 처음엔 트라우마 치료나 PTSD 관리용으로 개발되었지만, 곧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재설계하는 서비스로 확장됐다. 이제 사람들은 헤어진 연인의 흔적을 지우거나, 실패한 경험만 삭제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낸다. 한편에서는 긍정적인 기억만 남겨 자기 확신을 극대화하고, 일부는 특정 시기의 기억 전체를 ‘업데이트’한다.
기억은 자아의 기반이다. 그것을 바꾸는 순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과거를 수정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자아’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나는 내가 만든 나일까? 아니면, 지워버린 나의 잔재인가?
기억을 바꾼다고 진짜 나 자신도 바뀐 것일까? 사람들은 이제 자아의 지속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성격 업로드, 감정 필터링: 인간다움의 무너짐
기억 삭제 기술과 함께, 감정 조절 및 성격 업로드 기능도 발전했다. AI 심리 설계사가 제안하는 성격 템플릿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단 30일의 신경 훈련으로 이타적인 성격, 논리적인 사고, 강한 의지 등을 빠르게 장착할 수 있다. ‘기질 맞춤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인간다움의 본질을 위협한다.
감정은 원래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며, 성격은 환경과 경험이 쌓여 만들어지는 유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감정을 상품처럼 구매하고, 성격을 새 옷처럼 갈아입는다.
분노, 슬픔, 죄책감, 후회 같은 불편한 감정은 삭제되거나 약화된다. 이는 일견 좋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감정들 덕분에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하고, 후회하고, 용서를 배운다. 감정을 걸러낸 인간은 결국 마찰 없는 존재가 될 뿐, 깊이를 잃는다.
끊임없이 재설계되는 자아, 우리는 누구인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자아는 수십 번 변화한다. 이전에는 그 변화가 환경과 시간에 의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면,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즉각적으로 바뀐다.
기억을 지우고, 성격을 조정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삶. 사람들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불편한 자기를 회피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변화를 통해 나아지는가, 아니면 계속 도망치는가?
과거의 기억과 불편한 감정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발견했는데, 그 모든 것을 삭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자아를 ‘선택’하는 시대, 인간은 점점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자기계발이 아닌 ‘자기 편집’의 시대, 우리는 계속 묻는다. 나는 정말 나인가?
결론
기억을 삭제하고 감정을 걸러낸 당신은 더 나은 사람일까, 아니면 비어 있는 사람일까? 자아를 갈아입을 수 있는 시대, 중요한 건 진짜 ‘나’로 살아갈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