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찾아왔을 때, AI가 당신의 감정을 분석해 최적의 회복 절차를 제안해준다면? 우리는 감정을 기술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그것을 외주화하게 될까요?
감정도 설계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예측할 수 없지만, 이별은 종종 반복됩니다. 그 고통의 패턴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AI는 방대한 이별 사례 데이터를 학습하며 ‘감정 회복의 공통 구조’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별 후의 SNS 패턴, 검색어, 수면 시간, 식사량, 대인 접촉 빈도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 회복 곡선을 그리는 것이죠. 이제는 AI가 당신의 현재 정서 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회복 가이드를 설계하는 시대가 다가옵니다. “지금은 슬픔이 깊어지는 시기니,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는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볼 때입니다” 같은 피드백은 데이터 기반으로 제공됩니다. 감정 정리가 개인화된 치료 플랜처럼 다가오는 것입니다.
감정을 위탁하는 사회,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AI가 감정 회복을 도와주는 것은 분명 유용합니다. 슬픔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사람에게, 데이터는 대신 표현해주는 언어가 될 수 있죠. 하지만 동시에 우려도 존재합니다. 이별조차 정해진 플로우에 따라 처리하는 정서적 자동화가 시작된다면,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별은 비논리적 감정의 결정체입니다. 억울함, 미련, 분노, 슬픔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에,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AI가 그 감정을 미리 해석하고, 정리해주면, 우리는 그 ‘혼란’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요? 기술은 감정을 다룰 수 있어도, 고통을 겪는 인간의 깊이까지는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리된 감정보다, 혼란 속에서 우러난 감정이 때론 더 진실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회복이 아닌 ‘이별 경험의 최적화’라는 상상
AI는 단순한 위로의 도구를 넘어, 이별 자체를 새로운 경험으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당신의 이별을 기록하고, 이전 연애 패턴을 학습해 “다음엔 이런 방식의 관계가 더 어울립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죠. 마치 이별이 연애 데이터의 일종이 되는 느낌입니다. 더 나아가, 이별 후의 감정을 창작 콘텐츠로 전환해주는 AI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 음악, 일기 형식의 감정 기록물을 생성하고, 그것을 ‘이별 아카이브’로 남기는 식입니다. 이별은 단지 지나가는 고통이 아니라, 기록되고 설계되는 감정 콘텐츠가 됩니다. 이처럼 감정은 점차 ‘설계 가능한 경험’이 되어갑니다. 이는 위로의 새로운 형태이자, 인간 감정의 상품화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결론: 우리는 이별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AI가 감정을 정리해줄 수는 있지만, 감정 자체를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이별이란 결국,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맺는 순간입니다. 기술은 도와줄 수 있지만, 감정을 받아들이고 재구성하는 주체는 여전히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