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당신의 대화, 게시물, 검색 기록을 분석해 자서전을 써준다면 그 책 속 ‘나’는 과연 진짜 나일까요? 기억과 데이터, 서사의 경계에서 정체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자서전은 더 이상 사람이 쓰는 글이 아니다
과거 자서전은 명망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직접 혹은 대필로 써내려간 ‘인생 정리’의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AI는 당신이 남긴 디지털 흔적만으로도 자서전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메일, SNS, 검색 기록, 메시지, 위치 정보, 음성 대화까지 우리는 매일 방대한 삶의 데이터를 남깁니다. AI는 이 데이터를 구조화하여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았다”고 서사화된 글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서비스는 AI를 활용해 개인의 연대기를 자동으로 요약하거나, 감정 흐름을 분석해 글의 톤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서전을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자서전이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구성자가 내가 아니라면?
문제는 이것입니다. AI가 구성한 ‘나’는 내가 아는 ‘나’와 동일한가? 예컨대, AI는 당신이 자주 말한 단어, 반복적으로 관심 가진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중요한 순간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지나치는 관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을 선택하고 해석하며 ‘삶의 의미’를 만들지만, AI는 그저 패턴을 기반으로 가장 설명 가능한 삶의 구조를 제시합니다. 그 결과 자서전 속 당신은, 과거의 데이터에 가장 일관성 있게 설명되는 한 인간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당신에게 낯설다면, 그것은 ‘기억의 통제권’을 잃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AI 자서전은 더 정직하거나 더 왜곡되었거나
아이러니하게도, AI가 만든 자서전은 때로 더 정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흑역사, 약점, 모순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걸러내지만, AI는 데이터를 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AI는 서사의 맥락과 ‘의도된 침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어떤 사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더 깊이 표현하기도 합니다. AI는 그 결을 놓치고, 사실은 담았지만 의미는 잃은 서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AI 자서전은 자아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몰랐던 나, 혹은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해석의 총합일지도 모르니까요.
결론: 당신은 어떤 이야기로 기억되고 싶은가?
AI가 당신을 대신해 삶을 기록하는 시대, 중요한 건 ‘기록의 양’이 아니라 ‘해석의 주체성’입니다. 진짜 나를 쓰는 건 AI가 아니라, 그 글을 읽고 나를 다시 구성하려는 내 스스로의 질문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