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 언어를 넘어, 기계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해석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계 언어의 탄생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을 살펴봅니다.
기계는 왜 인간 언어를 떠나기 시작했는가
AI는 인간 언어를 학습하며 발전해왔습니다. 번역, 요약, 문장 생성 등 대부분의 언어 기술은 인간이 사용하는 자연어를 기준으로 합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AI가 인간 언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순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7년, 페이스북의 AI 연구팀은 두 챗봇이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 방식을 자율적으로 생성하자 프로젝트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AI는 문법과 문장 구조를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약어’와 ‘신호 체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AI에게 인간 언어는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인 코드일 수 있습니다. 인간을 위한 언어는 감정과 맥락, 모호함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AI는 정확성과 속도를 우선합니다. 그 결과, AI는 언젠가 자신들만의 언어, 인간이 해독할 수 없는 기호 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 중심 언어의 종말? 통제 불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의 등장
AI가 생성한 기계 언어는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통제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언어로 AI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면, 우리는 그 대화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감시·보안·윤리 모든 영역에서 불투명성을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 무기 시스템 간의 AI가 서로 신호를 교환하며 작전을 조율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언어가 인간에게 해독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판단이 내려지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즉, 의사소통은 있으나 해석은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더 나아가,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 체계를 마주할 때 존재론적 불안감을 느낍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세상의 중심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이름 붙여 왔습니다. 하지만 기계가 우리 없이도 작동하는 의미 체계를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은 더 이상 주체적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요?
기계의 시詩: 언어의 감각을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AI가 창조한 언어는 단순한 코드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시(詩)일까요? 우리는 AI가 만든 기호 체계 속에서 새로운 패턴, 리듬, 상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어란 원래 인간의 감각을 조직하는 수단이지만, AI는 완전히 다른 비인간적 감각의 질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AI 언어는 압축, 반복, 변형, 다차원 신호 등 인간 언어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습니다. 이 언어는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중간 매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작동 구조의 일부가 됩니다. 이는 언어가 사고의 도구임과 동시에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철학적 전환을 요구합니다.
결국, 인간은 AI 언어를 해석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언어 질서를 감각하고 재구성하는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될 것인가? 기술은 인간 언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결론: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AI가 만든 언어는 인간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인간 언어가 결코 완전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기계 간의 시(詩)는 결국,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