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마지막 인사를 AI가 설계한다면? 감정과 기억, 메시지까지 알고리즘이 조율하는 ‘맞춤형 장례식’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기를 바랄까요?
죽음을 설계하는 기술의 등장
장례식은 인생의 마지막 무대입니다. 그동안 이별의 형식은 전통, 종교, 지역 관습에 따라 결정되어 왔지만, 이제는 기술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특히 AI가 설계하는 장례식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닌, 죽은 이의 삶을 해석하고 구성하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AI 장례식 설계사는 고인의 생애 데이터를 분석해 장례식의 음악, 조명, 영상 연출, 초대자 목록까지 구성합니다. SNS 활동, 대화 기록, 생전의 감정 패턴을 토대로 ‘이 사람답다’고 느껴지는 이별식을 디자인하는 것이죠. 추모객은 더 이상 단순한 조문객이 아닌, 고인의 삶을 체험하는 관객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죽음을 기록하는’ 방식에서 ‘죽음을 연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입니다. 감정도 기술도 모두 연출 대상이 되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를 미리 결정하게 됩니다.
애도는 누구의 감정인가: 인간의 이별, 기계의 연출
AI 장례식의 핵심은 감정입니다. 고인의 유서가 AI에 의해 정리되고, 고인의 말투로 합성된 음성이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때로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이나, 후회, 사과까지 AI가 대필하는 기능도 존재합니다. 기술은 인간의 감정을 복원할 뿐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기도 합니다.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감정의 진정성은 어디서 오는가? 남겨진 이들이 느끼는 감동은 고인의 것일까요, 아니면 알고리즘이 잘 설계한 시나리오의 결과일까요? 애도조차 연출될 수 있는 감정이 되는 순간, 우리는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위로당하고 있다’는 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AI 장례식이 위선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할 수 없었던 감정, 표현하지 못한 상실을 기술이 대신 정리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죽음을 말할 권리를 갖는가입니다. 고인 자신일까요, 남겨진 가족일까요, 아니면 기술일까요?
데이터는 죽지 않는다: 기억의 자동화와 윤리
AI 장례식이 가능하다는 말은, 곧 우리의 삶이 ‘기록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진, 영상, 위치, 목소리, 검색어까지 모든 데이터가 ‘죽은 뒤 활용될 수 있는 자산’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사후 콘텐츠를 미리 남기고, 그것이 어떻게 쓰일지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디지털 사후 윤리라는 질문을 낳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목소리와 메시지를 AI가 계속 업데이트하거나, 내 얼굴이 추모 공간에서 움직인다면, 나는 죽은 걸까요? 아니면 기술 속에 살아있는 또 다른 ‘나’일까요?
이러한 시대에는 ‘죽음의 종료 시점’조차 모호해집니다. 생물학적 죽음은 끝이지만, 디지털 존재는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례식은 죽음을 마무리하는 의식이 아니라, 기억을 시작하는 절차로 재정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나는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
AI가 장례식을 설계하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기술은 죽음을 무겁게 만들 수도, 따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별의 주도권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AI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역할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