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난, 감염병, 전쟁, 태양폭풍. 지상 세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류는 도시를 지하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AI는 이 새로운 문명의 관리자이자 설계자가 될 수 있을까요?
지하로 내려가는 도시, 그리고 AI의 등장
지하 도시는 더 이상 공상과학의 상상이 아닙니다. 극한 기후, 생물학적 재난, 환경 붕괴로 인해 인류는 점점 ‘지상’을 포기하고 ‘지하’로 이동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미 몽골 울란바토르나 핀란드 헬싱키 등은 방대한 지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방공호나 지하상가 수준을 넘어선 ‘지하 복합 생태 도시’의 초기 형태를 띱니다.
이러한 지하 문명의 핵심은 AI 시스템의 통제입니다. 자연광이 차단된 밀폐 공간에서의 에너지 최적화, 공기 순환, 생태 유지를 위해선 수십 개의 복합 변수들이 실시간으로 통제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수동으로 조작할 수 없는 이 시스템의 복잡성은, AI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AI는 단순한 기술 보조가 아닌, 지하 문명의 운영자이자 공동 설계자로 기능합니다. AI는 인간보다 먼저 환경 위협을 감지하고, 에너지와 식량을 조절하며, 내부 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지하 공간은 어떻게 ‘사회’가 되는가?
지하 문명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사회 질서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일조권이 사라진 환경에서 시간의 흐름은 AI가 조정합니다. 인간은 AI가 설계한 낮과 밤의 조명을 따르고, AI가 제공하는 건강 리듬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인간의 생체리듬은 자연이 아닌 알고리즘에 의해 재편됩니다.
또한, 지하 도시에서는 공간의 제약이 극심하기 때문에, 생활권과 생산권, 여가권이 모두 혼합된 ‘복합공간’이 필수입니다. AI는 사람 간의 동선을 최적화하고, 소음·온도·습도까지 맞춤형으로 조절합니다. 모든 것이 AI에 의해 ‘배치된 삶’이 되면서, 인간은 자율성과 효율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단지 기능적일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설계되어야 합니다. AI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센서를 통해 감지하고,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가진 사람에게 음악, 조명, 색상 등을 조절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합니다. AI는 이제 공간 관리자에서 나아가 감정 조율자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인간과 AI의 공동 생존 실험
지하 문명은 일종의 생존 실험실이자 사회적 시뮬레이션 공간입니다. AI가 일상 운영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더 이상 '필수적 노동자'가 아닙니다. 대신 인간은 관계, 문화, 창조성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됩니다. AI는 생존을 책임지고, 인간은 삶의 의미를 재발명합니다.
문제는 이때 AI가 ‘과도하게’ 인간의 삶을 설계하게 될 위험입니다. 어떤 콘텐츠를 볼지, 어떤 경로로 이동할지, 어떤 인간과 교류할지조차 AI가 제안한다면, 인간은 ‘지능적 소비자’에서 ‘처방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선 민주주의, 자유의지, 창의성 같은 전통적 가치가 다시 정의돼야 합니다. AI가 만든 지하 문명은 단지 대체적 생활공간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기술과 어떻게 공존할지를 시험하는 윤리적 전환 공간입니다.
결론: 지하 문명은 재난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일까?
AI가 관리하는 지하 문명은 재난의 산물이 아닌, 새로운 사회 실험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안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건, 기술이 아닌 우리의 선택일지도 모릅니다.